중학교에 입학하면서 85년 저에게도 변화가 생겼었지요.

 

부모님께 무려 오천원이라는 한달용돈과 하루 2장씩의 회수권을 지급받게 되지요. 지금은 교통카드를 충전하여 이용하지만 그당시에는 종이에 회수권이라고 씌여져 있는 표를 버스수거함에 넣었지요. 아마 중고생은 현금은 100원을 냈었고 회수권은 90원이었을 겁니다.



  왼쪽에 있는 사진의 것이 중학교 1학년때 제가 썻던것과 같을겁니다. 학교에서 집까지 족히 1킬로미터는 넘었었고 정류장도 3정거장정도여서 걷기도 애매하고 학교를 가는 버스가 74번 한대 뿐이어서 저는 아침 일찍일어나 친구와 걸어다녔지요. 걸어다닌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제가 제일 사랑했던 간식들을 사먹기위해서 였죠. 일단 하루 걸어가면 180원을 확보할 수 있었죠. 학교 근처 떡볶이집들과 구내매점에서는 회수권도 현금화 할 수 있었는데 90원의 회수권을 현금으로 주진않았지만 먹을거나 학용품등으로 바꿀수 있었지요. 문제집이나 액수가 큰 준비물을 사려면 용돈외에 돈을 따로 받기도 했는데 그걸로는 바로 현금화 할 수 있었지만 주로 저는 회수권을 따로 모아 매일매일 구내매점과 학교 떡볶이집을 순회하였지요.

 엄마가 주시는 용돈외에 회수권으로 4,500원정도 쓸수 있는 돈이 생기는데 어떻게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겠나요. 학교 옥상에 있던 구내매점은 항상 음식냄새와 시멘트냄새가 섞인 묘한 냄새가 났었는데 지금도 그런 냄새를 맡으면 중학교매점이 생각나네요.

 주로 매점에서는 빠빠오라는 얼린 오렌지쥬스를 사먹었고 떡볶이 가게에서 회수권을 내면 떡볶이가 10개 튀김은 2개였었죠. 90원이어도 인심좋은 아주머니들은 100원 정도로 쳐주었죠. 개인적으로 가장 맛있었던 집이 있었는데 거긴 유독 아이들이 많아 항상 줄을 섰었지요. 하지만 회수권을 내면 칼같이 9개만 주었답니다. 젊은 오누이가 하는 곳이었는데 깔끔하기도 하고 맛도 좋았지만 조금 박하긴 했었죠. 가장 인심도 좋고 푸짐했던곳은 할머니가 하시던 곳이었는데 그곳은 떡볶이도 푸짐하고 특히 튀김이 크고 맛있었죠. 다른데서 보지못한 식빵튀김이나 떡튀김은 크기도 정말 컸고 맛도 좋았습니다. 회수권으로는 주로 분식을 사먹었었고 회수권을 받지 않는 곳에서는 용돈을 썼었지요.


용돈으로는 주로 뽑기와 오락을 했었네요. 뽑기는 집으로 오는길에 작은 천막을 치고 젊은 아주머니가 연탄불을 펴놓고 하셨는데 무척 친절하셨지요



 뽑기의 종류도 4가지정도로 기억합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설탕을 녹인뒤 소다를 넣어 부풀린 뒤 찍기틀로 찍어낸 것만 뽑기로 알고 있는데요. 그곳에서 파는 것은 다 50원이었고 일단 뽑기라 불리우는 지금의 뽑기가 있었구요.



 아마 포도당을 큰 깍두기 모양으로 잘라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게 달고나였을 겁니다. 그 깍두기를 국자에 녹인뒤에 소다를 넣으면 뽑기보다 뽀얗고 맛도 더 부드러운 달고나가 되는데 그건 찍기틀로 안찍고 국자째 놓고 젓가락으로 조금씩 먹었지요.


 다른 종류로는 소다빵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물과 설탕을 동시에 넣고 젓다가 끓을때 소다를 넣어 재빨리 저으면 미묘하게 다른 질감을 가진 것이 되었지요



 맛은 틀리지만 요런 느낌의 질감에 뽑기처럼 치밀한 느낌이 아니라 성긴 그물의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 완성이 되면 도토리묵 굳히지 전의 모양과 흡사한 것인데 아마도 녹말가루와 물을 넣은뒤 소다를 넣은것 같네요


 살짝 요런 느낌이죠.

 

 뽑기는 항상 들렀던것 같고 오락실엔 가끔들러서 갤러그나 너구리등을 했었던것 같아요.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하는 게임이나 컴퓨터로 하는 다양한 게임들이 많아서 단순한 패턴의 게임들은 잘 하지 않지만 그때는 정말 재미있었지요.




 돌이켜 추억해보니 정말 행복했던 시절이었네요. 또한 우리 아이들도 나름 지금의 어떤 다른 방식으로 80년대의 우리들처럼 추억을 쌓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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